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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실력이 부족한데, 디자이너 포기해야 할까?
브랜드 디자인 스튜디오 · 디자인 스튜디오 & 공방
약 5년 전
💬 멘티의 질문

안녕하세요, 멘토님.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는 3학년 멘티입니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꿈이 확고해서 편입이나,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어요. 이 과정에서 디자인 실무에 대한 걱정이 생겨 질문을 드립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시각언어를 활용한 커뮤니케이션에 큰 관심이 있어 고등학생 때 시각디자인학과를 지망했었는데요. 제가
 디자인학과 진학을 포기한 것은 바로 종이와 연필을 사용한 ‘입시 미술’에 정말 재능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freepik


그러나 디자이너의 꿈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특히 브랜드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통해 브랜드 경험을 창출하는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겼어요. 여기서 입시 미술에서 극복하지 못한 질문이 되살아났습니다. “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스케치, 일러스트레이션 능력이 떨어져도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죠.

그래서 저는 타이포그래피, 색감, 그리드 위주로 장점을 살리고,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워 단점을 보완함으로써 채용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나름의 전략을 세워봤는데요. 하지만 브랜드 컨설팅이나 그래픽 디자인 에이전시의 채용 조건 대부분에 “지면에 바로 스케치해 가시적인 컨셉을 보여주는 능력”이 명시된 것을 봤습니다. 

손으로 대상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능력이 있어야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것인지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현직자로 일하고 계신 멘토님이 시원하게 제 질문에 답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멘토님의 경험과 생각을 나눠주시면 저 역시 꿈을 이룬 뒤에 다른 이에게 경험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럼 환절기 건강 조심하시고,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 제다은 멘토의 답변


안녕하세요, 멘티님. 만나서 반갑습니다. 받아봤던 상담글 중에 가장 정제되고, 정리가 잘 된 글이어서 즐겁게 읽었네요. 제가 나눠드릴 경험과 생각을 다른 이에게도 전달하고 싶다는 멘티님의 착한 마음씨에 감동했어요. 그럼 기쁜 마음으로 답변을 쓰겠습니다.


©️GG5


손 그림은 디자인의 전부가 아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대상을 묘사하는 스케치, 그림 실력이 부족해도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손 그림 실력’은 비전공자가 디자인 분야로 넘어올 때 많이들 걱정하는 부분입니다. 그림 실력이 부족해서 디자이너가 될 수 없다는 건 멘티님처럼 미대 입시시험 때문에 생긴 오해라고 할 수 있어요.

일단 미대에서 실기시험을 치르는 이유부터 이야기해볼까요? 이는 색, 명도, 채도, 구도 등 
기초적인 조형원리를 활용해 표현하고자 하는 사물을 묘사할 수 있는지, 주어진 주제에 맞게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는지 판단하기 위해 실시하는데요. 이러한 능력들은 디자인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입시에서는 이를 평가하는 실기시험을 치르고 있습니다.


©️Mr.Whiskey


하지만 디자인의 전체적인 맥락에 시각을 확장하면, 손으로 그리든 컴퓨터로 표현하든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할 수만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입시는 표현 수단이 손으로 한정되니 어쩔 수 없이 ‘손 그림 능력’으로만 평가하는 거죠. 그러나 대학 실기 수업이나, 실무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조형은 손 그림 30%, 컴퓨터 70%의 비율로 표현하게 됩니다. 손 그림이 디자인의 전부가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디자인에 손 그림이 사용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일러스트 작업이 많이 필요하거나 감성적인 느낌이 필요한 프로젝트라면 손 그림 위주로 진행되는 프로젝트도 있어요.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디자인을 표현하는 방법은 정말 다양합니다. 실제로 손 그림이 전혀 사용되지 않는 프로젝트도 많이 이뤄져요. 따라서 디자이너가 손 그림 능력이 부족해도, 소프트웨어 툴을 다루는 작업, 타이포그래피, 편집 등 다른 분야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약점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대신 기본적인 조형이론은 알고 있어야겠죠.


©️Freedomz


능력 밖의 일은 외주를 맡기면 됩니다
손 그림 실력이 부족해도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를 알려드릴게요. 

디자인은 협업을 기본으로 하는 분야입니다. 회사마다 상황은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프로젝트를 하면 2인 이상의 디자이너가 팀을 이뤄서 맡게 됩니다. 하지만 같은 팀을 맡아도 디자이너 개개인의 강점은 정말 천차만별이에요. 

따라서 내가 부족한 지점이 있으면 다른 사람이 채워주고, 또 다른 사람이 부족한 점은 내가 채워줄 수 있습니다. 만약 디자이너 능력 밖의 일이 있다면 외주로 처리하면 되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거죠.

실제로 비중이 크지 않은 간단한 일러스트는 디자이너가 직접 처리하지만, 
일러스트가 중요하게 사용되는 작업은 전문 일러스트 작가에게 외주를 주는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본인이 포스터를 만드는 편집 디자이너인데, 이번에 작업할 홍보물에는 제목 타이틀이 정말 중요하다고 가정해볼게요. 일반적으로 편집 디자이너는 주어진 폰트를 사용할 뿐 서체를 직접 만들지는 않아요. 그래서 타이틀을 돋보이게 만들려면 전문 서체 디자이너에게 제목 타이틀만 디자인을 의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멘티님은 가지지 못한 것에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브랜드 디자이너의 꿈이 있다면 브랜드 기획력, 핵심 이미지 제작, 편집 디자인 능력 등을 기본적으로 갖추시면 되는 겁니다.


©️dotshock


혹시 브랜드 카피, 슬로건, 네이밍 등 능력 밖의 일이 들어온다면 각 분야의 전문가에게 외주로 업무를 맡기면 됩니다. 이렇게 디자인 분야 안에서도 전문 세부영역이 있기 때문에 여러 디자이너가 협업해서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거죠.

다만 예산이 부족한 소규모 프로젝트라면 외주를 맡기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디자이너가 여러 능력을 갖추고 있을 경우 유리할 수는 있겠죠. 편집 디자이너인데 레터링이나 캘리가 가능하다, 브랜드 디자이너인데 카피를 잘 쓴다. 이렇게 
다재다능하면 회사 입장에선 예산을 아낄 수 있어 어디서든 환영받는 존재가 되기 쉽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그림 실력은 있으면 좋은거지 필수는 절대 아닙니다.

또한, 입시 미술 덕분에 디자이너 대부분이 기본적인 실력은 갖추고 있어도 그 실력은 정말 제각각입니다. 왜냐하면 디자인 작업에는 컴퓨터가 훨씬 많이 사용되다 보니 손으로 그림 그리는 연습은 입시 이후에는 잘 하지 않거든요. 

물론 개인의 성향과 필요에 따라 지속적으로 연습하는 경우도 있죠. 그림을 잘 그린다면 분명 플러스가 되며, 작업에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어쨌든 타고난 실력을 보유해 일러스트 작가 수준으로 잘 그리는 디자이너가 있지만, 도저히 판매할 수 없는 그림 실력을 갖춘 디자이너도 많습니다.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그 중간에 있죠. 그러니까 멘티님도 너무 걱정하지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rawpixel


전문 분야는 확실하게, 스케치는 명료한 전달이 가능하게
글이 길어졌는데, 추가적인 내용을 덧붙이면서 답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저는 계속 말씀드린 것처럼 
전문가적인 손 그림 실력을 갖추는 게 디자이너의 필수 역량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디자이너는 본인의 분야에서 요구되는 핵심 능력만 닦으면 됩니다.

편집 디자이너는 주어진 서체와 이미지를 조화롭게 잘 배치하는 능력, 광고 디자이너는 광고 아이디어를 기획해 영상 이미지로 표현하는 능력, 서체 디자이너는 문자의 세부적인 형태를 만드는 조형 능력, 브랜드 디자이너는 기획한 브랜드의 특색을 시각언어로 표현하는 능력. 이렇게 각자 필요한 능력을 갖추면 되는 거죠.

저 역시도 기본적인 그림은 그릴 수 있어도 결코 작가 수준만큼 그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간단한 일러스트는 처리해도, 제가 소화하지 못하는 일러스트나 디자인이 있다면 클라이언트와 협의를 합니다. 예산이 넉넉하면 외주로 처리하고, 부족하면 일러스트를 포기하고 다른 컨셉으로 진행하는 등 
상황에 따른 유동적인 업무 처리가 가능해요.


©️Africa Studio


멘티님이 채용 공고에서 보셨던 스케치 능력은 분명 작가 수준의 그림을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이 계획한 디자인이 무엇인지 설득할 수 있는 스케치를 그릴 실력 정도면 충분해요. 디자인 실무에서 잘 된 스케치는 미적으로 아름다운 스케치가 아니고, 자기 생각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스케치입니다. 스케치가 최종 결과물은 아니니까요.

따라서 선, 명암, 색채, 형태를 얼마나 실제처럼 묘사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해와 전달이 쉬운 스케치를 하면 되는 거죠. 이걸 
‘언어적 스케치’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이렇게 실용적인 수준의 스케치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질문이 알차서 의욕적으로 답하다 보니 제 글도 길어졌네요. 손 그림 실력이 부족하다고 절대 디자이너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추가로 질문이 생기면 다시 질문해주세요. 

제다은 멘토
브랜드 디자인 스튜디오 · 디자인 스튜디오 & 공방
디자인/예술
제품디자인을 전공한 시각디자이너입니다.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는 사라져가는 전통공예에 현대적 디자인을 접목하는
전통공예 스튜디오 '부치부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동안 맡아왔던 업무는 굉장히 여러가지 입니다.
1. 자영업자를 위한 기업 시각홍보물 디자인
2. 브랜드 디자인 및 자사 포트폴리오 관리
3. 브랜드 디자인 강의
저는 사람들이 말하는 잘나가는 디자이너는 아닙니다. 서울권대학, 대기업, 유명에이전시 출신도 아닙니다. 평범한 지방 4년제 대학을 나왔으며 평범한 중소기업, 디자인에이전시에서 근무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항상 하고싶은 일을 하며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기에 만족하는 삶을 살고있습니다.
저는 국내 상위층, 소수가 겪는 삶이 아닌 평범한 다수가 겪는 삶을 걷고있습니다. 공기업, 대기업에 관한 멘토링은 이미 차고 넘칩니다. 하지만 왜 중소기업에서 일을 잘하며 행복하게 살수있도록 조언을 얻는 멘토링은 없을까요? 우리 모두가 일류대학, 대기업을 목표로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저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일반적인 디자인 에이전시나 작은 스튜디오, 중소기업 인하우스 디자이너를 목표로 취업준비를 하고 계신 분. 또는 시각디자인을 독학하여야하는 상황에 놓이신 비전공자분들에게 더욱 현실적인 이야기와 조언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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