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토님. 저는 현재 4년 차 출판편집자입니다. 그간 문학, 자기계발 등 다양한 책들을 담당해 왔습니다.
©Hitoshi Suzuki
깔끔하게 정리된 원고에 기뻐하는 저자들을 보며 보람도 느끼고 몇몇 책으로는 값진 성과를 얻기도 하였습니다. 무엇보다 스스로도 적성에 맞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최근 출판기획을 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생기네요.
그간 제가 한 일을 생각해 보면 항상 '시키는 일'만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저 나름대로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상사가 제게 (이미 완성되어 있는) 그 원고를 배정했기에 작업했다는 점에서 성과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출판기획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이직을 고민 중인데, 이미 출판편집자로 4년 차에 접어들고 있는 데다 공고를 보면 출판기획 경력자를 원하는 곳이 많아 고민이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멘토님께 궁금한 점을 아래에 정리하여 적어봅니다.
1. 기획 경험이라면 회사 블로그 포스팅 정도밖에 해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출판기획편집자로서 경쟁력이 있을까요? 이미 연차나 나이가 다소 있는데, 신입으로 지원해도 괜찮을까요?
2. 출판기획자의 업무 루틴이 궁금합니다.
3. 출판기획자가 하는 여러 업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4. 출판기획 업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은 무엇일까요?
5. 이직을 준비하면서 기획 경험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 기획제안서를 쓰는 것 외에 스스로 기획을 해볼 만한 경험이 있을까요?
출판기획에 대해 아는 것이 그다지 없고 고민은 많아 질문이 길어졌습니다. 고견 들려주시면 앞으로 진로를 계획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럼 답변 부탁드리며 글 줄입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현업에 계신 동업자분이 질문을 주시니 반갑습니다.
보내주신 질문을 모두 읽고 약간 의아했습니다. 사실 4년차에 하실 고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간략한 경력사항을 보고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정보가 조금 더 있더라면 확실하게 파악할 수 있겠지만, 이건 개인차가 아니라 환경 문제라고 짐작합니다. 지금의 환경이 원인이라면 바꾸시는 편이 더 이익이 될 거고요. 그러니 질문하신 분의 입장에서는 지금 발전적인 고민을 하고 계신 거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부분에 이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은 보내주신 질문에 나름의 답을 드리고, 종합적인 의견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출판사 편집부에 입사하면 처음부터 기획회의에 참석하고 나름대로의 기획안을 만들어 보기도 하지만, 처음부터 그 기획안이 채택되기는 어렵습니다. 아이템 선정부터 잘못되어 아예 폐기되거나, 아이템은 괜찮더라도 방향과 구성, 저자 섭외, 일정, 비용 등 전반적인 사항이 필요합니다.
사수의 도움이나 탁월한 감각으로 기획안이 통과되더라도 중간에 엎어지는 경우도 많으니, 실제 책으로 만들어지는 기획을 하기까지는 길게는 수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신입 편집자는 스탭으로서 편집 과정 일부에 참여하다가, 익숙해지면 편집 대부분을 진행하다고, 그러다 책임편집을 하고, 기획부터 편집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작업을 맡고, 디자인과 마케팅과 제작까지를 포함해 모든 작업을 관리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 과정을 고려하면, 질문하신 분은 교정교열을 주로 맡은 4년차 편집자입니다. 다만 출판사의 시스템상 기획을 하는 포지션이 아닐 뿐이지요. 사회생활 4년차. 나이가 많고 적음은 제가 나서서 조언 해드릴 부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쓴 잇다 콘텐츠를 보시거나, 주변 이야기를 들어보시면 출판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실 겁니다.
저는 보통 3~5종 정도를 담당하고 진행합니다. 1~2종은 편집 중, 나머지는 저자분이 집필 중입니다.
아침에는 보통 메일 확인, 당일 업무 정리, 제가 있는 출판사의 판매지수나 분야 순위 등을 확인합니다. 그러면서 투고원고를 간단하게 검토하고 분류합니다. 오후에 더 자세하게 검토할 원고와 출간하지 못할 원고를 나눕니다. 그리고 온라인서점 베스트셀러와 오늘의 책을 파악합니다. 월요일에는 신문서평을 확인하기도 하는데, 요즘은 빈도가 줄었습니다. 그리고 계획된 회의나 편집 업무를 진행합니다. 편집은 지금 하고 계시니 잘 아실 거라 생각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인스타와 유튜브 독서 관련 활동이나 콘텐츠가 많은 플랫폼에서 동향을 확인하기도 합니다. 이런 건 보통 점심이나 출퇴근 중에 확인합니다.
기획자는 자기만의 안테나가 있습니다. 안테나는 항상 독자를 향해 있습니다. 여기서 얻는 아이템 중 몸담은 회사에 어울리는 것들을 기획으로 만들어 출판사마다의 시스템에 맞춰 기획회의 등에서 보고합니다. 통과되면 저자 섭외, 미팅, 계약을 진행하고 저자는 원고를 집필합니다. 저자와 소통하며 집필일정을 파악하고 관리합니다.
©Jianxiang Wu
편집과 진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도든 시간 면에서든 기획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연차가 많이 쌓이거나 회사 시스템상 편집을 직접 하지 않는 경우도 많지만, 기획의도에 맞는 방향으로 일정에 맞춰 편집, 디자인, 제작을 진행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고 계신 일은 기획자로서도 중요한 업무 중에 하나입니다.
경험입니다. 기획자 자신의 주요 업무는 물론, 진행의 주체로서 일정을 관리하려면 각 파트의 업무도 알아야 합니다. 디자이너와 소통하고, 마케터가 중요하게 여기는 셀링포인트 또한 기획 방향을 유지하며 더 발전시켜야 하고, 내용뿐만 아니라 손에 잡히는 상품으로 제작하는 과정 또한 숙지해야 합니다.
저는 머리로만 아는 게 아니라 개인적으로든 일적으로든 그 일을 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개성이 나옵니다. 내가 모든 업무를 다 아니까 모든 스탭을 휘어잡으며 독불장군처럼 갈 수도 있겠고, 각 스탭의 전문성을 존중하며 소통하면서 갈 수도 있습니다. 소통과 경험을 쌓으며 리더십을 성장시켜 중간관리자나 임원이 되어 갑니다.
©Airam Dato-on
1) 편집 구성도 기획
기획을 잡고 섭외한 저자가 기획 방향대로 집필을 했는지 검토하며, 기획 단계에서 잡은 구성에서 더 발전시켜 구성을 편집하는 것도 기획력을 성장시키는 방법입니다.
디자인, 제작, 마케팅에 익숙한 기획자가 기획을 현실적으로 짜는 것처럼, 편집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편집자 본인의 포지션이기 때문에 더 확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2) 타 도서 기획 분석
종합베스트보다는 분야베스트 중심으로 기획 분석을 해보시는 걸 권합니다. 내 손이 가는 책도 좋습니다. 처음에는 책을 읽고 원고의 SWOT 분석을 하며, 저자의 인지도가 출판시장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원고 주제의 시장성은 어떤지 분석하고, 마지막으로 나라면 어떻게 하겠다는 방식으로 분석하시는 걸 추천해 드립니다. 나중에는 책을 다 읽지 않고 서지정보만 훑어도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3) 마케팅 분석 및 기획
자비출판이라는 용어가 생겨나면서 그와 대비하기 위해 기획출판이라는 용어가 생겼습니다. 그만큼 저자가 아닌 독자를 위한 책, 시장성이 중요한 책을 기획하게 됩니다. 팔릴 책을 기획하는 거지요. 마케팅은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파는 것까지입니다. 어떻게 기획해서 어떻게 알려서 파는지를 알아보시면 훌륭한 훈련이 될 겁니다. 2)와 3)을 계속 해나가다 보면 전반적인 트렌드 파악도 됩니다 .
4) 다른 업종 상품 기획 분석
독자가 적어지고 있다거나, 국민 독서량이 적어지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올 때마다 책 이외에 다른 문화상품이 많아서라는 원인분석이 나옵니다. 하지만 그 상품도 그 시장 안에서 치열하게 경쟁합니다. 독자가 아니라 대중을 떠올려 보세요.
많은 드라마 중 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많이 봤을까? 이런 고민은 드라마 대본집을 출간하는 것부터, 시대의 감성을 읽고 그 감성을 공유하는 타깃층을 고려한 책 출간까지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 습관화가 되면 모든 게 기획으로 보이기 시작하실 겁니다.
보내주신 질문에 답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위에 말씀드린 환경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을 보태고 싶습니다. 편집과 기획 포지션이 완전히 나뉘어 있는 출판사는 사실 많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단행본" 출판사는 그렇습니다. 교재 출판사나 자비출판 전문 출판사에서는 책을 만들자고 제안하는 주체가 저자나 영업부 중심이니, 편집부에서 기획을 하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편집 일이 기획자의 일 중 하나라고 말씀드렸지만, 몸담고 계신 출판사는 기획출판을 하는 출판사의 시스템과는 많이 다릅니다. 기획출판 출판사의 편집자로 계셨다면 하지 않을 고민을 하고 계신 것이죠. 시스템상 기획자로서 성장하기는 어려울 거라 예상합니다.
기획과 마케팅이 편집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책을 만드는 이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을 더 오랫동안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포기보다 성장이 필요합니다. 그 성장의 방향에 기획이 있고, 마케팅이 있습니다. 이직하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