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멘티님. 현직 변리사입니다. 일단 질문의 방향이 조금 애매한데요. 아마 지금 진로 고민이 굉장히 많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현 직장에 대한 불만이 많이 쌓였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진로는 보다 이성적으로 살펴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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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답변을 드리기 위해 질문을 여러 번 읽어 보았는데요. 멘티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정리해 보면, (1)현 직장보다 높은 연봉과 직위를 원하고 (2)단순 반복 업무가 아닌 좀 더 어렵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으며 (3)나이 들어서도 계속할 수 있는 일이면서 (4) 야근이 많지 않고 대기업 이상의 연봉을 받아 일과 삶의 균형이 적절하고 (5) 자기 계발이 가능한 직업으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합니다.
삶의 질 확보 Vs. 업무 가치 향상
우선 제가 보기에는 (2)번과 (4)번은 조금 상충되는 듯합니다. 고객이 변리사에게 돈을 주고 의뢰를 하는 건 그 일이 그만큼 골치가 아프기 때문입니다. 야근이 많을 가능성이 높죠. 어쩌면 밤샘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 수습 중에 밤을 새우는 사람이 꽤 있고, 저도 그랬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생각입니다만, 야근이 많지 않고 정시 출퇴근을 하며 일과 삶의 균형이 맞는 업무는 반복적이고 재미없는 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복적이고 관행적인 업무일 수 있다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리사 업무 중에서도 인커밍 업무를 한다면 대기업 연봉 정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조금은 가혹하지만 여기서 현실적인 사장의 관점에서 잠깐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어떤 직원이 반복적인 업무를 하면서 대기업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다면 어떨까요. 아마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퇴직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신입을 들여서 일을 배우게 할 수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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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나를 대체 불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자기 계발이 중요해지는 거죠. 변리사 자격증도 여기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회사에 다니면서 자기 계발을 하려면 엄청나게 강한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일과 삶의 균형은 이루어지지 않겠죠. 어쩌면 일과 삶의 균형을 확보하면서 할 수 있는 자기 계발이라면 취미 정도가 돼야 할지 모릅니다.
제 판단에는 멘티님께서 원하는 부분이 서로 맴돌고 있다고 보입니다. 마치 어느 것 하나를 맞추면 다른 하나가 부족해지는 상황인 거죠. 멘티님께서 방향을 잡으셔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일과 삶의 균형을 포기하고 독하게 가는 길을 선택할 것이냐, 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여 무난히 갈 것이냐를 말이죠.
‘여성으로서 직장에서 오래 살아남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잠깐 하셨는데요. 어떤 직업을 가지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능력 위주의 전문직인 변리 업계에서는 남녀를 가르지 않습니다.
모든 조건을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변리사 업무 중에서도 일과 삶의 균형이 높은 업무가 있습니다. 앞서 예를 드린 인커밍 업무가 그렇고요. 기업에 특허 담당자로 취직할 수도 있습니다. 대신 연봉과 비전은 포기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쪽 일을 하게 되면 사내 정치에서 벗어나기 힘들 수도 있고요.
반면에 연봉이 높은 변리사 업무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일과 삶의 균형은 일단 접어두셔야 합니다. 만일 일과 삶의 균형까지 괜찮다면 뭔가 심각한 단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자리는 경쟁이 치열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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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만약 변리사가 되더라도 내 능력을 높이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실제로 석박사 과정을 밟거나 어학연수를 가기도 하고요. 그 외 다른 자격사를 도전하는 변리사도 꽤 있습니다.
육아 휴직 후 복귀가 보장되진 않아요.
또 아시다시피, 전문직은 복지 제도가 없습니다. 혹시라도 있다면 그건 혜택이겠지요. 만약 회사에서 육아 휴직을 사용한 변리사가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면 사무소에서 먼저 자리 유지를 제안합니다. 실제 제 동기 중에서 육아 휴직을 쓰고도 회사와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가 있었죠. 그 외의 경우에는 대부분 눈치껏 먼저 나가는 게 보통입니다.
그리고 재택근무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출퇴근이 너무 멀어서 아이 어린이집 사정 때문에 재택근무하는 경우를 보기도 했습니다.
변리사 업무는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드라이브하는 경우가 많기에 ‘정치’가 심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머리를 많이 써야 해서 여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합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고객의 대리인인 법조 서비스이기 때문에 '을'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해야 하고요. 또 업무가 정확해야 하므로 성격이 꼼꼼하지 않으면 많이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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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리사 도전, 도피성이 아니길
이제 주신 질문에 대한 제 답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도피성으로 변리사 쪽을 도전하지는 않으시길 바란다는 거예요. 일과 삶의 균형을 찾는다는 이직의 의미로 도전하기에는 그 위험이 너무 큽니다. 변리사 시험은 합격문이 매우 좁은 '고시'이거든요.
그리고 일과 삶의 균형이 맞춰지면 다른 하나를 잃는다는 점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나이 들어서도 계속할 수 있으면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은 변리사 개업이겠지만, 이것 역시 매달 안정적인 급여를 받을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
끝으로 한 말씀 드리자면, 단순 반복 업무를 싫어하신다는 점에서는 변리사 일이 맞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저도 재미없는 일은 못 참는데, 변리사 일은 재미없진 않거든요.
제 답변이 도움이 되었길 바랍니다. 그럼 많은 고민 하셔서 좋은 결정 내리시길 바랄게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