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멘토님. UX 디자이너 혹은 UX 리서처가 되고 싶은 4학년 멘티입니다. 요즘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 대학원을 가야 할지, 간다면 어떤 랩실에 가야 할지 혹은 학사졸업 후 스타트업부터 시작해서 경력을 쌓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궁금한 점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멘토님께서는 대학원을 졸업하셨던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어떤 학부/석사 랩실을 나오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대학원 학비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 제가 경제적으로 좋지 않은 상황이라 궁금합니다.
2. 현재 제 스펙이 서울대, 카이스트, 포항공대 산업공학, 산업디자인, 인간공학 랩실 등에 지원할만한 수준인가요? 만약 아니라면 대학원 진학이나 취업을 위해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3. 나중에 대기업에서 일하고 싶은데 석박사 이상이 더 유리할까요? 마지막으로 한국 UX 디자이너 연봉 관련 글은 찾아볼 수가 없던데, 혹시 대기업 UX 디자이너 직군 평균 연봉이 어느 정도 되나요? 경제적인 문제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서요.
이상입니다. 혹시 더 해주고 싶으신 조언이나 충고가 있으시다면 달게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멘티님 반가워요. 질문이 많아서 제가 답변하는 게 버거울까 봐 염려한 모양이에요.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 게 질문이 구체적일수록 제가 답변하기 훨씬 수월하답니다. 글에서 멘티님의 절박한 심정이 느껴져서 성의껏 보답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참고로 제 멘토링 스타일은 경험에 입각한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상반되는 선택지의 장단점을 말해서 멘티님 스스로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되게끔 하는 겁니다. 이를 참고하셨으면 합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포기하지 마세요
저는 학부는 서울 소재 H 사립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학과를 나왔고 석사는 서울 소재 Y 사립대학교 정보대학원(UX 전공)을 나왔습니다. 등록금의 경우 결론부터 얘기하면 딱 1년 치만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고, 그 외 등록금 및 기타 생활비 등은 모두 그전에 벌어둔 조금의 돈과 장학금으로 충당했습니다.
이건 배경설명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아요. 사실 회사에 다녔는데 너무 안 맞아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방법이 없어서 무척 괴로운 삶을 살고 있었지요. 20명 남짓의 작은 회사였고 을도 아닌 병의 위치에서 초짜로 일하다 보니 아무런 가망이 없는 삶 같은 느낌을 받으며 지냈답니다.
우연히 어떤 컨퍼런스에서 제가 나온 대학원을 다니던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자꾸 자기 대학원이 저랑 잘 맞을 것 같다고 그러는 거예요. 당시 대학원에 진학하고픈 마음만 있지 학비가 없으니 꿈도 못 꾸고 있어서 ‘내가 돈이 없는데 마음만으로 되겠냐’고 했더니 생각보다 장학금을 받을 방법이나 제도가 많다는 거예요. 솔깃했죠.
참고로 제가 다닌 대학원은 전문대학원으로 분류됩니다. 쉽게 말하면, 실무중심 대학원인 셈이죠. 교육목표 또한 유수의 인재를 다시 산업 현장으로 배출하는 것이었습니다. 교수가 되기 위한 일반대학원의 학구적인 분위기와 사뭇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산학 프로젝트 등을 통해 장학금 조달이 가능한 편이었답니다.
물론 그 혜택이 나한테 올곧이 돌아온다는 법은 없어요. 프로젝트를 크게 한 이후 일이 없어 굶는(?) 연구실도 있고 교수님이 어떻게든 학생들 챙겨주려고 프로젝트 따와도 고생길 훤한 프로젝트를 학생이 달가워하지 않는 경우도 있거든요.
저도 학비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는데, 생각보다 그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는 대학원이나 연구실이 있더라고요. 물론 그 안에서도 경쟁이나 운에 의해 혜택을 받게 되고요.
그러니 관심 있다 싶은 연구실에 직접 찾아가 보세요. 가서 다니는 학생들을 붙들고 물어보세요. 저도 그랬거든요. 가보면 대충 답이 나와요. 그 연구실이 어떤 연구실이고 내 입에 풀칠도 해줄 수 있는지 등을요.
돈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대학원이라는 선택지를 그냥 포기하진 말란 의미입니다. 발품을 팔면 그만큼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으니 겁먹지 마세요. 다만 대학원에 가라고 추천하는 건 아니니 중립을 유지하고 아래 답변도 잘 읽었으면 해요.
평가자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전략을 짜세요
어쩜 저랑 생각의 흐름이 똑같은지. 저도 돈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그다음 스펙이 걱정됐어요. 솔직히 학부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회사경력, 영어 성적, 자격증 등이 없었거든요.
대학원 합격 여부는 솔직히 교수님 맘이에요. 교수님이 마음에 드는 구석이 있으면 뽑아주시고 아무리 스펙이 화려해도 아니면 안 된다고 보면 됩니다. 특히 일반대학원은 학계로 학생을 들여보낸다는 개념이 있어서 소위 말하는 라인이 중요해요. 어느 교수님의 사사를 받은 뭐 이런 것들 말이죠.
멘티님 이력을 보니 되게 많은 활동을 하셨네요. 제가 멘티님을 평가하는 교수라면 이것저것 많이 물어볼 것 같아요. 우리 대학원, 연구실에서 얻고 싶은게 무엇인지, 어떤 부분에서 전문성을 더 쌓고 싶은지 등을요. 배척하고자 던지는 질문은 아닙니다. 사실 UX를 많이 알고 오는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거든요.
석사 과정에서 공부 외적으로 연구실을 돌아가게 하는 여러 잡무를 포함한 다양한 프로젝트도 할 수 있어서 교수님들은 지원자가 그걸 감당할 수 있을지도 보는 것 같아요. TO도 생각보다 당락을 많이 좌우하지요.
특히 UX는 다학제적 분야라 출신 학부가 정말 다양해요. 특정 학부 출신에 대한 편견보다는 기대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여기서 기대란 ‘이런 경험을 지닌 재원이 우리 연구실에 왔으니 앞으로 어떤 것이 가능해지겠구나’ 같은 것들이죠. 교수님 중심에서 말이죠.
학생과 교수가 서로 상생하는 관계만 되면 부족한 스펙도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반대학원은 좀 엄격할 수 있겠는데 전문대학원이라면 실제로 가진 능력을 볼 수 있다는 점. 그러니 마찬가지로 관심 있는 연구실과 교수님을 찾아가세요.
말하자면 학생이 교수님을 면접 보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나를 포장하고 어떤 능력을 중심으로 어필해야 다른 학생을 뽑을 자리에 나를 앉히겠구나’에 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정말 직접적인 대답이 듣고 싶다면, 차라리 그 연구실 학생한테 스펙을 보여주고 직접 물어보는 방법도 있어요. 용기가 필요하겠지만요.
사실 저도 그랬어요. 처음 취업할 때나 대학원에 지원할 때 ‘도대체 내가 뭘 더 채워야 하지?’ 걱정했고 결과가 좋지 않을 때 내가 뭐가 부족했는지 곱씹곤 했죠.
멘티님에게는 직접 두드려보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뭘 더 채우는 것만큼이나 어떻게 정리하는지가 중요한 시점 같아요. 근데 그 기준을 본인이 설정하면 위험해요. 뽑히고 선발되는 게임에 뛰어드는 구도이니 말이죠. 저한테 질문한 것도 그 일환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원이든 회사든 직간접적으로 계속 두드리세요. 누구든 만나서 현재의 실상을 최대한 파악하려고 파고들어야 해요. 그래야 그들이 원하는 걸 알게 되고 거기에 맞춰 의미 있는 전략을 짤 수 있답니다.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할지 저절로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제 성격이랑 하나도 맞지 않는 행동이었는데 너무 절박하니까 사람이 움직이게 되더라고요. 정량적인 것을 채우려고만 들면 내가 밋밋해져요. 물론 UX 쪽을 희망하니 업계 트렌드에도 항상 촉각을 곤두세워야겠죠.
회사가 먼저냐 석사가 먼저냐는 닭이냐 달걀이냐와 같은 고민
‘나중에’라는 표현을 썼네요. 좋은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대기업에서 ‘꼭’ 일하고 싶은데 제가 더 보완해야 할 점이 뭘까요?”라는 질문에는 좋은 답을 하기 어렵습니다. 저 역시 흘러 흘러 대기업에 들어가서요. ‘꼭’이라는 것은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 대기업은 HR이라는 조직이 크게 존재하다 보니 사람을 뽑을 때 지원자가 실무 조직책임자의 입맛만 맞춰줄 수는 없긴 합니다. 기업별로 내부 HR 가이드라인 같은 게 있다고 들었어요.
회사마다 다를 것 같은데 L 회사에서 본 수백 명의 UX 디자이너들을 살펴봤을 때 아무래도 석박사 출신이 수적으로 더 많긴 합니다. 분야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 같긴 해요. 근데 필수란 얘긴 아니에요. 그리고 일정 연차나 조건을 충족하면 회사에서 학위파견을 보내주기도 합니다. 회사에 재직하면서 석사, 박사를 할 수도 있답니다.
석박사 학위가 입사 당락을 좌우하지는 않아요. 오히려 석사, 특히 박사에게는 전문분야가 있기에 기대치가 다릅니다. 그만큼 급여 출발점도 다르기에 회사는 그럴만한 가치를 지닌 인재인지를 은연중에 더 보게 됩니다.
회사가 먼저냐 석사가 먼저냐는 닭이냐 달걀이냐와 같은 고민 같아요. ‘되는대로’라는 답변이 터무니없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인생이 뜻하는 대로 펼쳐지지 않으니 노력을 해보고 되는 방향에 맞게끔 수정해 나아가면 된다고 말하고 싶네요.
저는 20대 때 학부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서 뭘 해야 할지 가닥이 잡히면 그쪽 회사로 진출해서 일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대학원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결국 스타트업, 소규모 회사를 전전하다가 대학원을 통해서 극적으로 커리어가 정리됐죠.
높은 급여를 원한다면 성과가 좋은 사업부를 공략
연봉의 경우 직군별로 따지긴 어려울 것 같고 대체로 그 회사의 급여 수준을 따르는 것 같아요. L사는 기업 문화는 좋은 편이지만 대기업치고 연봉이 적은 편이에요. 그래서 급여가 좋은 편인 H 사나 S 사로 많이 이직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같은 직군 내에서 급여가 더 높은 곳으로 이직할 수 있으니 첫 단추부터 금수저가 되겠다고 기회의 폭을 좁힐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성과급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네요. 성과급이란 연말에 한해 사업성과가 좋으면 추가로 받게 되는 월급 이외의 보너스에요. 사실 이게 개인마다도 다를 수 있어서 일반화할 수가 없어요. 대기업은 사업부별로 성과가 다르니 차이가 크게 날 수도 있거든요.
N 사에 다니는 제 친구는 이 성과급을 더 받으려고 내부에서 서로 경쟁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급여가 좋은 회사에 가고 싶다면 현재 사업이 잘되는 사업부 내 UX 디자인 부서를 노려보세요.
물론 어렵겠죠. 그분들이 그 좋은 곳을 나가고 싶겠어요? 현재 UX 업계의 최대 문제가 TO가 많지 않아 신입들에게 기회가 적다는 것이에요. 급여보다도 그게 좀 더 안타까운 부분 같답니다.
원하는 답을 얻었는지 모르겠어요. 잇다를 통해 만난 멘티가 실제로 제 후배가 된 사례도 있어서 몇 자 더 덧붙여봅니다.
그 친구도 절박한 상태였고, 오프라인 멘토링에서 직접 만나보니까 많이 의기소침 해있고 자존감도 떨어져 있고 안타까웠어요. 대학원을 고려하지 않고 있었는데 제 이야기를 듣고 지원하겠다고 해서 자기소개서를 봐주고 몇 차례 조언을 더 해줘서 합격했어요.
만약 제가 나온 대학원과 연구실의 현재 모습이 궁금하다면 저보단 재학생의 이야기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너무 들이대라고만 조언한 것 같아서 이런 연결고리도 있다는 것까지만 언급하겠습니다.
회사에 대해서도 더 물어봐도 좋아요. 그리고 포트폴리오에 대한 조언을 요청하는 멘티도 많았으니까 그런 부분도 언제든지 도움 줄 수 있답니다.
몸과 마음 양쪽 모두 건강관리 유념하세요. 취업이든 입시든 남녀관계랑 똑같아요. 누구에게든 연이 있으니 꼭 좋은 인연 만나길 바랍니다. 질문이 좋아서 배지도 드립니다. 그럼 행운을 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