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게임 회사 로컬라이제이션, 사업 PM 등에 지원하고 있습니다. 전공은 일문과이고 현재 공공기관에서 인턴을 하면서 일본어 번역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멘토님. 사실 저는 게임에 대한 조예가 그리 깊지 않습니다. 닌텐도 게임 타이틀 몇 개를 좋아하는 정도지 게임을 즐기는 편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면접에서 게임 관련 질문이 나오면 당황스럽습니다.
©️Fredrick Tendong
1. 경력상에서도 게임 관련한 경험이 없어서 왜 게임회사에 오려고 하냐고 면접관이 물어보면 '게임을 할 때 개발자가 어떤 식으로 만들었는지 분석하면서 게임한다' 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더 좋은 답변이 있을까요? 면접에서 왜 하필 게임 산업군이냐고 끊임없이 물어보는데 게임을 좋아한다는 이유 말고 더 그럴듯한 말이 있을까요?
2. 요즘 RPG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많은데 저는 RPG 게임보다는 마인 크래프트 같은 가벼운 게임을 좋아합니다. 만약에 제가 좋아하는 장르의 게임을 담당하지 못하고 하드한 게임을 담당하게 된다면 그때도 잘할 수 있냐고 물어본 면접관이 있었는데, 이 질문에는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요? 저는 책임감으로 끝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대답했습니다.
3. 게임 산업에서 로컬라이제이션, 사업 pm 등을 뽑을 때 외국어랑 현지 거주 경험을 많이 보던데 이것 말고도 인성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있을까요? 1차에서는 직무보다는 인성 위주로 물어보는데 어떤 스타일의 사람을 좋아하는지 궁금합니다.
현직자 멘토님의 솔직한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고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멘티님. 게임회사 로컬라이제이션/사업 PM 쪽으로 준비하고 계시는군요. 질문 내용을 보고서 답변을 적다 보니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답변 방향을 어떻게 잡을까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드려야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몇 번이고 고쳐 쓰게 되네요.
멘티님 스스로도 어느 정도는 원인을 알고 계시는 듯합니다만, 면접관이 자소서나 면접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지원자의 경력 사항, 관심사 등에 '게임에 대한 깊은 관심'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게임에 대한 조예가 깊은 지원자'에게는 그런 질문 자체가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임 업계, 특히 개발팀에는 어렸을 때부터 게임에 푹 빠져서 살아온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대부분 플랫폼과 장르를 가리지 않고 즐기는 사람들이고, 게임에 대해서라면 종일이라도 떠들 수 있는 사람들이죠. 멘티님이 지원하시는 로컬라이제이션, 사업 PM 모두 개발팀과 매우 면밀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는 직종입니다. 그들과 원활하게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을 뽑아야 하는 면접관은 게임 경험도 다양하지 않고, 지식도 많지 않은 멘티님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거예요.
나름대로 열심히 대답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경력이 없는데 게임 산업군에 지원했는가?"라는 질문이 자꾸만 나온다면, 멘티님이 준비하신 답변에서 진솔함을 느끼기 어려웠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임에 대한 커다란 열정과 꿈을 가진 지원자가 넘쳐나는 마당이고, 그들은 분명 "왜 지원했는가"라는 질문에 면접관이 보기에 만족스러운 수준의 심도 있는 대답을 했을 테니까요.
©️Nadine Shaabana
개발팀에서 사람을 뽑는다면 어떤 플랫폼과 어떤 장르의 게임 경력을 쌓았는가를 상당히 중요하게 볼 것입니다. 구직자들은 이를 보고 이직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개발과 직접적 관계가 낮은 지원부서라면 얘기가 다릅니다.
특히 사업이나 로컬라이제이션 직종은 플랫폼과 장르를 따질 필요성이 낮습니다. 내가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회사가 맡기는 일감을 처리해야 하거든요. 일감 배분에 있어서 개개인의 취향이 반영될 여지가 없다는 것이죠. 내가 전혀 모르는 장르라도 동일 장르의 경쟁작 리서치를 해야 하고, 담당 게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해당 게임 개발자와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알고 계신 바와 같이, 한국의 게임 시장의 주류는 RPG가 장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한국의 메이저한 게임회사에 들어간 멘티님이 담당하게 될 게임도 그런 RPG 장르일 확률이 훨씬 높겠지요. 그러니 "좋아하지 않는 게임을 담당해도 잘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요. 실제 입사 후 담당하실 게임은 분명 동물의 숲 같은 라이트한 게임이 아닐 테니 말입니다.
물론 '책임감'을 포함해서 적당하고 무난한 답변으로 이 질문을 넘어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멘티님,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세요.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장르의 영화를 3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서 보는 것도 어려운데, 내가 싫어하는 장르의, 이해하지도 못하는, 때로는 재미조차 없는 게임을 최소 6개월 이상, 매일 8시간씩 접하고 토론하고 공부하고 마주할 수 있나요?
인성 요소를 물어보셨는데, 면접에서 알고자 하는 건 그냥 모난 부분이 없는지, 우리팀 및 타팀과 잘 어울릴 수 있을지 정도입니다. 굳이 몇 가지 요소를 꼽아보자면 적극성, 꼼꼼함, 부지런함, 둥글둥글함 정도를 들 수 있겠지만, 이건 회사와 직종을 떠나서 회사원이라면 어지간해선 갖추는 것이 바람직한 부분들이겠죠.
직무적인 부분에서 강조하고 싶은 건 로컬라이제이션이라면 언어 센스(소위 말하는 초월번역 감각), 트렌드 캐칭, 어느 정도의 완벽주의가 권장되고, 사업PM은 수치 데이터를 읽을 줄 아는 능력, 주요 사용자층에 맞는 BM 설계 능력 등이 권장됩니다.
멘티님, 냉정하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럴듯한 대답"에 대해서 질문하셨는데, 제가 물론 "그럴듯한 대답"을 지어내 드릴 수는 있지만, 그게 멘티님께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나의 실제 경험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답변은, 면접관의 꼬리를 무는 질문에 의해 반드시 그 밑천이 드러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매우 코어하게 게임을 즐기는, 게임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사람조차도 막상 게임 업계에 들어와선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봅니다. 게임을 즐기는 것과 게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또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라서요. 10년 차 경력자조차도 직업적 자기계발을 위해서 끊임없이 최신 게임을 파악해두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업계이기도 하고요.
제가 감히 멘티님의 삶을 모두 알지는 못합니다만, 멘티님의 글에 나타나는 게임에 대한 관심도를 보았을 때, 멘티님이 제 후배였다면 극구 지원을 말릴 것 같습니다. 라이트하게 게임을 즐기는 정도로는 다른 지원자와의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하기 어려울뿐더러, 운 좋게 붙는다 한들, 먹고 싶지 않은 것을 매일 삼시세끼 꾸역꾸역 먹어야 하는 삶일 수 있어요.
안 그래도 열정페이의 흔적이 짙게 남은 이 업계에 지금 상태로 도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겨우 입사하고 고생해서 일을 배우는데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서 몸도 마음도 상한 채로 또다시 이직을 준비해야 한다면 그 역시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이겠어요.
회사는 한창때의 내 삶의 반 혹은 그 이상을 쏟아부어야 하는 곳입니다. 그러니 잠깐이라도 자신의 마음에 솔직하게 묻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멘티님의 삶의 목표가 무엇이며, 그것은 과연 게임 업계에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인지를요. 아직 내가 어느 쪽에 잘 맞는지 모르겠다면 좀 더 스스로를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는 것도 좋고, 그래도 게임업계가 궁금하다면, 기회가 아주 많은 것은 아니지만, 몇몇 게임회사에서 진행하는 서포터즈 류의 행사나 아르바이트 혹은 인턴 기회부터 알아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