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만이라도 나에게 따뜻한 사람이 된다는 의미
취업준비를 하면 탈락이란 단어를 어느때보다 많이 마주하게 됩니다. 며칠 동안 고민하며 작성한 자기 소개서는 인사 담당자가 읽어는 보았는지 의구심이 들만큼 탈락이란 결과는 냉정합니다. 정말 난공불락의 성처럼 보이던 서류심사, 인적성을 뚫고 올라간 면접은 작은 희망처럼 보이지만, 또 한 번 탈락을 마주합니다. 분명히 나는 대답을 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탈락이었을까, 내 옆에 있던 지원자가 영어를 더 잘했나 아니면 경력자가 중간에 있었나, 그것도 아니라면 내정자가 있었을까 등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면접 과정을 돌아봅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맥주 한 캔을 따고 멍하니 노트북 모니터를 바라봅니다. 오늘 하루는 고생한 나를 다독여주고, 내일부터 다시 집중하자고 마음을 다잡고 취업 공고를 찾습니다.
취업을 준비할 때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최소한의 자존감마저 남겨둘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 취업준비라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최종 면접에서 수차례 탈락이란 경험을 하게 된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취업을 준비해야하나 싶습니다.
서점을 돌아다니면 '그럼에도 무쇠의 소뿔처럼 나아가라.'라는 말을 보면서 나를 다독여봅니다.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끝까지 버티라'는 말들이 많습니다. 취업은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말말말입니다. 그래서 나에게도 이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 생각은 제가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늘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총 4번의 이직을 했습니다. 학부 졸업 후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고 이 직장, 저 직장을 다니고, 31살에 대학원에 입학해서 공부했습니다.
친구들은 이름을 말하면 알만한 대기업, 공기업, 누구는 사업을 준비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에 비하면 저는 여전히 '꿈'을 찾아다니는 철없는 아이처럼 보였으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친구들의 성공담은 저의 자존감뿐만 아니라 멘탈을 모두 부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나마 어떤 직장을 잡아도 다른 친구들의 연봉에 절반도 안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져서 겨우 붙잡고 있던 자존감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나락으로 빠졌습니다. 그래서 우울증 초기 증상까지 겪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니 회사에서도, 다른 일에서도 지속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동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몸무게는 대학원 이후 최고치인 96kg을 찍었으니 설상가상이었습니다. 그나마 블로그를 통해서 대학원 생활을 리뷰한 글의 좋아요에서 위안을 얻으며 살았습니다. 어찌보면 찌질이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찌질이처럼 살아보니 알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이 나를 찌질이, 자존감이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인지 원인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원인을 찾아나가는 목적은 단순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출근 길에 차도에 몸을 던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고싶어!'라는 생각이 지금 나의 자존감을 무너뜨린 원인을 찾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환경을 바꾸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제 인생의 마지막일 수 있는 네 번째 이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33살 남성 직장인의 이직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작은 조각조차 찾을 수 없는 자존감, 자신감을 가지고 이직을 준비하는 것은 더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직을 준비한 이유는 지금 나를 이렇게 만드는 환경을, 나 자신을 파괴하는 행동을 멈추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환경보다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고, 파괴하지 말자.'는 생각이 이직의 근본적인 동기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의 고비를 넘기고 이직에 성공했습니다.
저는 이직을 준비했던 그때를 돌이켜보면 처절하게 버텼습니다. 최대한 술을 끊고, 퇴근 후 운동을 하고, 자기소개서를 준비하고, 취업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면접 팁들을 공부하고, 이직에서 주의해야할 점들을 공부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직을 완료 후 일기장에 한 마디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일기장에 이 한 마디를 쓰고나니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슬픈 영화를 보아도 소리내어 울어본 적이 없었는데 책상 앞에 앉아서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습니다. 대학-취업-이직-대학원-취업-이직을 해온 지난 7년 동안 단 한 번도 나에게 '오늘 하루 고생 했다. 열심히 했다는 것 잘 알고 있다.'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많은 멘티들을 만나고,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고생 했습니다. 열심히 잘 했다."라는 말은 많이 해주었지만, 저에게 이 말 한마디를 해주는데 7년이 걸렸습니다.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무너진 자존감을 다시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은 타인의 위로도, 성공한 취업 후기도, 훌륭한 멘토의 조언이 아니라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는 태도와 말 한 마디'로 충분했습니다. 그 한 마디가 나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지쳐 쓰려진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은 나에게 매우 엄격한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취업에 성공할 때까지 커리어 개발 외에 신경을 쓰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엄격함이 오히려 나를 아프게 하는 행동이라는 점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만큼은 나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취업을 준비할 때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최소한의 자존감마저 남겨둘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 취업준비라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최종 면접에서 수차례 탈락이란 경험을 하게 된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취업을 준비해야하나 싶습니다.
서점을 돌아다니면 '그럼에도 무쇠의 소뿔처럼 나아가라.'라는 말을 보면서 나를 다독여봅니다.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후기를 보면 '끝까지 버티라'는 말들이 많습니다. 취업은 단기전이 아니라 장기전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취업에 성공한 사람들의 말말말입니다. 그래서 나에게도 이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지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 생각은 제가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늘 가지고 있었던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총 4번의 이직을 했습니다. 학부 졸업 후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고 이 직장, 저 직장을 다니고, 31살에 대학원에 입학해서 공부했습니다.
친구들은 이름을 말하면 알만한 대기업, 공기업, 누구는 사업을 준비하며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에 비하면 저는 여전히 '꿈'을 찾아다니는 철없는 아이처럼 보였으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볼 수 있는 친구들의 성공담은 저의 자존감뿐만 아니라 멘탈을 모두 부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나마 어떤 직장을 잡아도 다른 친구들의 연봉에 절반도 안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져서 겨우 붙잡고 있던 자존감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나락으로 빠졌습니다. 그래서 우울증 초기 증상까지 겪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부정하게 되니 회사에서도, 다른 일에서도 지속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동력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몸무게는 대학원 이후 최고치인 96kg을 찍었으니 설상가상이었습니다. 그나마 블로그를 통해서 대학원 생활을 리뷰한 글의 좋아요에서 위안을 얻으며 살았습니다. 어찌보면 찌질이처럼 살았습니다.
그런데 찌질이처럼 살아보니 알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이 나를 찌질이, 자존감이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인지 원인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원인을 찾아나가는 목적은 단순했습니다. 이렇게 살다가는 출근 길에 차도에 몸을 던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살고싶어!'라는 생각이 지금 나의 자존감을 무너뜨린 원인을 찾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환경을 바꾸기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제 인생의 마지막일 수 있는 네 번째 이직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33살 남성 직장인의 이직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작은 조각조차 찾을 수 없는 자존감, 자신감을 가지고 이직을 준비하는 것은 더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직을 준비한 이유는 지금 나를 이렇게 만드는 환경을, 나 자신을 파괴하는 행동을 멈추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환경보다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말고, 파괴하지 말자.'는 생각이 이직의 근본적인 동기였습니다. 그리고 세 번의 고비를 넘기고 이직에 성공했습니다.
저는 이직을 준비했던 그때를 돌이켜보면 처절하게 버텼습니다. 최대한 술을 끊고, 퇴근 후 운동을 하고, 자기소개서를 준비하고, 취업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면접 팁들을 공부하고, 이직에서 주의해야할 점들을 공부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직을 완료 후 일기장에 한 마디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일기장에 이 한 마디를 쓰고나니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슬픈 영화를 보아도 소리내어 울어본 적이 없었는데 책상 앞에 앉아서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습니다. 대학-취업-이직-대학원-취업-이직을 해온 지난 7년 동안 단 한 번도 나에게 '오늘 하루 고생 했다. 열심히 했다는 것 잘 알고 있다.'라는 말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많은 멘티들을 만나고,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고생 했습니다. 열심히 잘 했다."라는 말은 많이 해주었지만, 저에게 이 말 한마디를 해주는데 7년이 걸렸습니다.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무너진 자존감을 다시 일으켜줄 수 있는 것은 타인의 위로도, 성공한 취업 후기도, 훌륭한 멘토의 조언이 아니라 '나의 노력을 인정해주는 태도와 말 한 마디'로 충분했습니다. 그 한 마디가 나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지쳐 쓰려진 나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위로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은 나에게 매우 엄격한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취업에 성공할 때까지 커리어 개발 외에 신경을 쓰는 것은 굉장히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그 엄격함이 오히려 나를 아프게 하는 행동이라는 점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보다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만큼은 나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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