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국제개발협력 사업이 어려운 이유
코로나19의 장기화는 모든 분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해외와 교류를 바탕으로 사업을 수행하는 국제개발협력 사업은 사업 기획부터 운영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시작한 2020년 1월부터 현재까지 수행한 국제개발협력사업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사업명은 밝히지 않는 점을 양해 부탁드리며, 이 글의 내용은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어 주관적인 견해가 많다는 점을 미리 밝힙니다.
2020년 1월 파라과이를 대상으로 한 직업교육훈련 국제협력사업을 수행하였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저는 1월 파라과이 출장을 다녀와야 했지만, 2월에 계획된 UAE 출장 준비로 인해 파라과이 국제협력사업 착수 보고회 출장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비대면 국제협력사업은 시작 되었습니다.
연초까지 파라과이 국제협력사업팀은 코로나19의 장기화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파라과이 측 담당자들도 코로나19는 한시적인 전염병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한국 연구팀은 3월~4월 사이에 계획했던 2차 현지조사 출장이 불발되면서 코로나19가 장기화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결국 불안감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1월에 수행된 착수 보고회를 제외한 2차 현지조사 출장, 파라과이 정책 담당자 초청연수, 최종 결과보고회 출장이 모두 불발되었습니다. 파라과이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2020년 3월 내외국인 출입국을 금지하는 ‘국경 봉쇄령’을 발령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파라과이 국제협력사업 연구팀은 화상회의 기반의 비대면 국제개발협력 사업으로 방향을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출처:https://www.ppomppu.co.kr/zboard/view.php?id=jjalbang&no=16446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화상회의’와 국제개발협력은 궁합이 별로...
현지 출장이 불가능한 상황은 화상회의를 대안으로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화상회의를 활용한 회의가 보편화되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초기에는 화상회의는 국제협력사업에서 거의 고려되지 않는 방법이었습니다.
비대면 국제개발협력 사업에서 화상회의는 편리함보다 단점이 많습니다. 먼저 인터넷 속도입니다. 파라과이의 인터넷 인프라는 한국만큼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화상회의 과정에서 영상의 끊김 현상,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등 많은 오류들이 발생했습니다. 심지어 파라과이 장관이 참석하는 최종보고회의 인터넷 상태는 너무 좋지 않아서 화면과 음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상황까지 발생했었습니다.
출처: 무한도전
"화상회의 끊김 현상이 실무자에게 미치는 증상"
한국도 화상회의에 대한 준비가 미흡했었습니다. 코로나19 이전의 국제협력사업은 현지 출장을 통한 조사와 면담을 통해 자료를 수집했었습니다. 현지 출장이 가능하므로 화상회의는 긴급한 상황을 제외하면 거의 활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화상회의 장비가 낙후되었거나 혹은 화상회의 장비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용하는 방법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19 확산 초기에 화상회의 장비 개선과 사용법을 익히는데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어려운 점은 통역과 시차였습니다. 화상회의는 양 국가의 시차를 고려해서 진행됩니다. 한국과 파라과이의 시차는 12시간입니다. 한국의 오전 9시는 파라과이의 오후 9시이고, 파라과이의 오전 9시는 한국의 오후 9시입니다. 시차로 인하여 연구 결과를 검토하는 회의는 최대 2시간 내외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차로 인한 부족한 회의 시간은 통역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한국과 파라과이 연구팀의 화상회의는 한국어 – 스페인어 순차 통역으로 진행 되어 담당자들이 실질적으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 1시간 이내였습니다. 결국 부족한 회의 시간은 서면 인터뷰를 활용해 보완하였지만, 현지 관계자의 의지와 전문성에 따라서 연구 결과물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결국 품질관리 문제로도 이어지게 됩니다.
게다가 정서적 교류와 친목을 도모할 수 없는 환경은 예상하지 못한 단점이 되었습니다. 현지 출장을 통해 양 국가의 연구자들은 친목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화상회의는 짧은 시간 내에 필요한 이야기만 나누어야 하므로 서로 친목을 도모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부족합니다. 정서적 교감이 국제협력사업을 성공요인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문화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정서적 교감, 친밀도는 사업을 매끄럽게 수행할 수 있는 윤활제가 됩니다. 이런 점에서, 화상회의는 국제협력사업 수행과정에 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서적 교감과 친밀도 형성을 단절시키게 되었습니다.
결국 화상회의 기반의 국제협력사업이 제시하는 시사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현지 관계자 면담과 사업 관련 기관(혹은 시설)을 방문하지 못하여 사업조사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비록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하더라도, 현지 관계자 면담을 실시하지 못하여 현지 상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화상회의를 통해서 어느 정도 정보를 수집할 수 있지만, 화상회의 장비 보유 여부, 인터넷 속도 등이 변수가 됩니다. 게다가 현지와 한국의 시차는 사업을 수행하는 연구팀의 정신적·육체적 피로도를 높여서 장시간의 회의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결국 화상회의는 현지와 한국 관계자들이 심층 면담과 인터뷰가 아니라 단계별로 완성된 연구(사업)결과를 공유에만 집중하여 연구(사업)에 필요한 세부 사항을 면밀히 조사하는데 한계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화상회의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현지 전문가를 적극 활용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 시대의 국제협력사업은 현지 전문가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서 성패가 달라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지 전문가 활용전략의 핵심은 ‘계약서의 내용 이행’, ‘회의내용의 문서화 및 공유’입니다. 추가로 현지 전문가가 ‘한국에 대한 친밀도와 이해도’가 높다면 더욱 좋겠지만, 위의 두 가지만 철저히 지켜도 무방합니다.
‘신뢰’, 비대면 국제개발협력 사업의 새로운 변수
파라과이 국제협력사업을 수행할 때 현지 전문가 활용에 필요한 계약서를 작성했었습니다. 계약서에는 현지 전문가들이 수행하는 과업의 내용, 비용 등에 대한 사항들을 명시한 공식 문서입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현지 출장을 통해서 현지 전문가들이 과업을 성실히 수행 하였는지 직접 확인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에는 현지 출장이 불가능하므로 현지 전문가의 과업 수행 여부에 대한 신뢰가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그래서 계약 내용을 바탕으로 현지 전문가들이 과업을 얼마나 성실하게 수행하였는지 검토하는 모니터링이 매우 중요합니다. 결국 현지 전문가의 과업 수행에 대한 신뢰와 모니터링은 비대면 국제개발협력 사업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가 되었습니다.
또한, 현지 전문가와 논의한 내용은 반드시 현지 언어로 번역하여 공유 해야 합니다. 화상회의로 진행하면 해당 회의를 녹화하여 영상자료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연구진들은 평균 2시간 이상의 영상자료를 검토할 수 있는 여유가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회의록은 비대면 국제개발협력 사업에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의록’이 재조명 받는 비대면 국제개발협력 사업
파라과이 국제협력사업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의사소통과 의견 교환이었습니다. 비록 화상회의를 실시하지만, 통역으로 인해 전달되는 내용을 모두 기억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회의록을 작성 후 현지 언어로 번역하여 공유했습니다. 현지 관계자에게 공유된 회의록을 바탕으로 다음 화상회의에서 합의점을 도출하고, 연구내용을 보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의할 점은 현지 관계자에게 “회의록에 정리된 내용은 양 국가의 연구팀의 공식 의견이다.”라는 것을 반드시 안내해야 합니다. 비대면 국제개발협력 사업의 핵심은 제한된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 단계의 연구(사업)내용과 결과에 대한 의견은 신중히 검토하여 결정된 내용이며, 합의된 사항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모니터링과 평가’는 비대면 국제개발협력 사업의 핵심
마지막으로 강조할 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화상회의 개최계획에 대한 세밀한 조율입니다. 국제협력사업 일정의 절반은 현지 출장 일정을 조율하는데 쓰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이후의 국제협력사업은 화상회의 일정 사전협의에 많은 시간을 소요해야 합니다. 특히 파라과이처럼 시차가 큰 국가라면 더욱 세밀한 조정과 협의가 요구됩니다.
게다가 개발도상국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통행금지령을 발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개발도상국 관계자들은 회의 장소로 이동할 수 없어 집에서 화상회의를 참석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불안한 인터넷 접속 상태로 인해서 화상회의에 참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화상회의 개최계획은 연구(사업)을 시작하기 전 단계부터 혹은 코로나19로 인해 사업수행 계획이 변경된 즉시 세밀한 조율과 협의가 요구됩니다. 만약 현지의 통행 금지령이 발령된 상황이라면 현지의 대사관을 통해서라도 현지 관계자들이 화상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협조를 구하는 방법도 모색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연구(사업)의 결과에 대한 엄격한 모니터링과 평가를 통한 품질관리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비대면 국제개발협력 사업은 현지 출장을 통해 현지 관계자들의 과업 수행 여부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현지 사업의 결과는 현지 전문가의 전문성, 신뢰에 의존해야 합니다. 이로 인하여, 연구(사업) 결과의 품질은 현지 전문가의 전문성, 의지 여부에 따라서 천차만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대면 국제개발협력 사업은 모니터링과 평가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하여 연구(사업) 결과의 품질을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요구됩니다.
결국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수행한 비대면 국제협력사업이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정서적 교류와 친밀도를 높일 수 있는 접근방법이 필요합니다. 과거의 국제개발협력 사업은 현지 출장을 통해 현지 관계자들과 친밀도를 높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장기화 이후 현지 출장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현지 관계자와 정서적 교류, 친밀도를 높이는 것은 매우 어려워졌습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 현지 관계자와 정서적 교류, 친밀도를 높일 수 있는 접근방법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모니터링과 평가는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수행하는 모든 기관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어야 합니다. 비대면 국제개발협력 사업의 쟁점은 ‘사업 결과의 품질관리’입니다. 그동안 모니터링과 평가는 원조 전문기관에서만 필요한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코로나19 이후에는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수행하는 모든 기관에서 ‘모니터링과 평가’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할 수 있는 체계가 요구됩니다.
화상회의는 당분간 현지 출장을 대체하는 사업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화상회의 장비 보유와 지원, 화상회의 일정 조율 등은 사업을 수행하는 초기 단계부터 세밀하게 조율되어 결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비대면 국제개발협력사업은 기존의 국제개발협력 사업보다 난이도가 훨씬 높아졌습니다. 특히 현지 조사가 불가능한 상황은 사업 분야의 전문성뿐만 아니라 지역과 문화에 대한 이해도, 전문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대면 국제개발협력 사업은 국제개발에 대한 이해도, 분야 이해도, 지역과 문화에 대한 이해도를 고루 갖추는 역량을 요구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국제개발협력 실무자로써 털어보는 업계의 이야기(멘토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