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성장 시대에 사는 MZ세대의 고민
작년 10월 소셜멘토링 잇다에서 멘토로 활동하던 중에 취업 준비생에게 질문을 받았다. 게임 개발 PM 직군에 지원하고 싶고 자신이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이런저런 공부를 진행하던 차에 궁금증이 생겨 여러 질문을 쏟아내듯 보냈다. 다른 학생들과 다르게 확실히 자신이 어느 정도 정보를 검색하고 학습한 이후 나올만한 질문이었다. 해당 질문에 정성스럽게 답변을 남겼고 (대략 4,000자 정도.. A4 두장) 감사하다는 간단한 응답을 받았다.
보통 소셜멘토링 잇다에서 온라인으로 멘토링을 진행하면 질문은 한 번에서 끝난다. 그렇지만 그 멘티는 남달랐다. 내가 질문에 답변한 내용에서 파생되는 다른 질문 거리를 찾아 자신이 어떻게 활용할지 재 질문했다. 4년이 넘도록 멘토링을 진행했지만, 재질문은 처음이어서 적잖이 놀랐다. 취업 준비생의 심경이 어떤지 가늠할 수 있었다.
'아.. 이 친구는 진짜 절실한가 보네..'
두 번째 받은 질문에도 성실히 답변을 해주었다. 그렇게 답변을 보내고 하루가 지나서 또다시 질문이 도착했다. 사실 세 번째 질문에는 불쾌감이 없지 않아 생겼다. 개발 PM과 전혀 다른 엉뚱한 질문이어서 이쯤에서 그만 질문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나름 알아듣기 쉽게 답변을 작성한 이후 멘티는 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 다시 멘티에게 연락이 도착했다.
이번에 질문과 더불어 좋은 소식이 담겨 있었다. 게임 개발 PM 직군으로 다른 대기업이라 부르는 곳에서 면접을 진행한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면접에서 어떤 내용을 이야기해야 할지 궁금증을 풀기 위한 질문이 담겨있었다. 멘티가 면접을 잘 치렀으면 하는 마음에 여러 가지 직문 면접과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면서 발생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힌트를 몇 가지 맥락에 맞게 설명해주었다.
여기서 잠깐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무보수로 누군가를 돕는 행위가 과연 공짜일까? 사람이 사람을 돕는 과정에서 무보수로 시간을 보내거나, 사은품으로 어딘가에서 물건을 무료로 나눠준다는 홍보에 너도나도 달려가 기다리는 과정이 과연 공짜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무료로 나눠주는 물건을 얻으려면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사용하는 기다림이 발생한다. 기나긴 줄은 그 모습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마케팅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무료로 물건을 나눠주는 듯한 모습이지만 그 이면에는 경제적 가치로 환원할 수 없는 여러 효과가 가득하다.
그렇다면 무보수로 온라인 상에서 누군가에게 멘토링 하는 과정은 어떨까? 40대 중반이 된 나이에 20대의 고민을 들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취업 준비생은 자신이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하여, 고마움을 느끼겠지만, 그렇다고 도움을 주는 입장이 전혀 시간 낭비가 아니라는 뜻이다.
인간은 단 한 번의 삶을 살 뿐이다. 다른 사람의 삶과 다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다. 결혼하여 아이를 양육하는 어려움을 겪은 사람은 딩크로 사는 부부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딩크로 사는 부부는 아이를 키우는 삶을 살지 못해 아이가 있는 부부를 부러워할 수 있다. 사람은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를 도와주는 행위가 절대 공짜라고 할 수 없다. 타인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생각에 답변하려면 그에 알맞은 문장과 상황을 생각하고 고민해야 적절한 해결책으로 제시가 가능하다. 이렇게 답변하는 과정에서 본인이 생각을 정리하고 그 답변이 도움이 되었는지 아닌지 멘티의 피드백으로 알아가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자산으로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이러한 여러 멘티의 고민을 듣는다면 나름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수 있다. 그들의 공통 관심사를 제법 듣다 보면 그들의 세대가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알게 된다. 결국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하나의 비즈니스가 되지 않을까.
면접을 앞둔 멘티의 질문에도 정성스럽게 답변을 남겼다. 그 멘티는 결국 게임 업계에서 대기업이라 부르는 곳에 입사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조언을 해준 내용이 정말 도움이 되었다는 멘티의 소식은 다시 한번 돕는 자의 희열을 맛보게 해 주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흘러 다시 연락이 왔다.
회사 생활에서 수습 기간에 여러 어려움을 겪었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온라인 질문이 아닌 통화를 하고 싶다는 쪽지를 받았다. 수습 기간에 불안함은 누구나 다 겪는 과정이다. 그렇지만 회사에서 대부분 사수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거치며 적응한다. 그런데 외부의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무언가 낌새가 이상했다. 그래서 멘티의 도움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흔쾌히 승낙했다.
사회생활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이다. 물론 운이 굉장히 좋아서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과 한 팀을 이루기도 한다. 그렇지만 급격한 발전을 이루고 저성장 시대로 변화한 한국 사회에서 적응하기란 무척 어렵다. 서로 경쟁해야 하고, 자신의 역량을 다른 누군가에게 전수하는 일이 자신의 밥그릇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예상외로 많다.
멘티의 고민도 비슷했다. 입사한 지 2달이 지났지만, 면접 전에 알려준 내용이 입사 이후에 전혀 업데이트되지 않고, 어려움에 허덕이고 있다고 말했다. 1시간가량 통화하며 멘티의 마음을 우선 달래주었고, 여러 선택이 있다는 조언과 함께 선택은 본인에게 달려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그 멘티는 결국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주변 사람들도 나름 대기업에서 퇴사한다는 이야기에 안타까워했나 보다. 그렇지만 본인의 인생은 그 누군가가 책임지지 않는다. 본인의 결정에 그다음 스텝은 무엇인지 방향을 알려주었다.
제법 시간이 흘러 멘티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오프라인으로 이야기를 나누던 멘티에게도 다시 연락이 오는 경우가 없었는데 느슨한 유대감이라는 단어가 무엇인지 다시 깨닫는 시간이었다. 함께 얼굴을 마주하며 대면으로 인사를 나누는 단계까지 오게 되었다.
두 시간이 넘도록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멘티는 자신이 어떻게 면접 준비를 했으며, 면접에서 어떤 준비를 진행했고, 어떻게 발표했는지 들려주었다. 사실 입사에 성공한 회사에 한 번에 합격한 건 아니라고 했다. 한번 면접을 보고 불합격 통보를 받고, 새롭게 자소서와 포트폴리오를 전면 개선하여 다시 3개월 후에 지원하여 합격한 케이스였다.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다시 도전하는 멘티의 성장을 보며 어떻게 20대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분명 내가 보낸 20대의 시간과 환경이 달랐다.
멘티의 여러 삶을 들어보며, 4년 동안 꾸준히 독서하며 글을 쓰며 익힌 학습 능력이 얼마나 귀중한 자산이 되는지 알려주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독서와 글쓰기, 운동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에게 닥친 코앞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독서와 글쓰기, 운동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마련이다.
멘티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하여 개발일지를 쓰던 지난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08년에 쓴 개발일지의 내용이었다. 무려 13년 전의 일이지만 여전히 또렷이 기억하는 이유는 다이어리에 기록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XX님. 10년 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기억하나요? 절대 그렇지 않죠. 그래서 기록하는 거예요. 기록은 기억을 이겨요."
"아... 진짜 그렇네요. 당장 일주일 전에 무엇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데.."
"물론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의 업무 역량을 키우는 일이에요. 그렇지만 독서와 업무 일지 작성으로 향상된 능력은 지금 당장 나타나는 역량은 아닐지라도 분명 가장 탄탄한 기본이 되는 능력입니다."
"아.. 이건 정말 꾸준히 해봐야겠네요. 이런 말씀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근데 XX님은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 역시 도움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네?? 그게 무슨..."
"세상에 공짜는 없어요. 지금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제가 XX님에게 했던 말이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는 저도 시도를 해봐야 아는 내용이죠. 그런데 이렇게 반응이 좋다면 다른 누군가에게도 필요한 내용이라는 하나의 데이터가 구축되는 겁니다. 저 역시도 XX님을 통해 도움을 받는 거죠."
"와.. 그런 이야기는 처음 듣네요."
"오늘 긴 이야기를 나눴지만, 딱 두 가지만 기억하면 좋겠네요. '기록은 기억을 이긴다'와 '진정성을 갖고 꾸준히 기록하면 자신의 정체성이 된다'에요."
"네. 진짜 저도 꾸준히 성장해보겠습니다."
사람은 타이밍이 존재한다. 그 타이밍은 운이다. 그렇지만 그 운이 동작하려면 평소에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를 불편하게 생각하거나 시도와 도전을 게을리하면 운이라는 기회는 도달하지 않는다. 그 운을 양의 창발로 만들려면 꾸준히 학습하고 성장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어떤 경험을 성공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실패라 부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자신이 그 경험을 어떻게 만드는 가에 따라 공짜가 되기도 하고, 무엇과도 바꾸지 못하는 통찰의 순간이 될 수도 있다. 모든 현상에는 양면성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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