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개발협력 전문가의 정의에 변화가 필요하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전문가의 모습은 무엇인가요?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전문가는 “어떤 분야를 연구하거나 그 일에 종사하여 그 분야에 상당한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정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해서 결정을 내리죠.
제가 몸을 담고 있는 국제개발협력에도 전문가들이 있습니다. 권율 외(2021)의 연구에 따르면, 국제개발협력의 전문가를 분야 전문가와 국제개발 전문가로 구분합니다. 분야 전문가는 “개발 관련 분야 학위 또는 일정 기간 이상의 실무경험을 갖춘 분야(sector)별 전문가”를 지칭하고, 국제개발 전문가는 “개도국 지역사정 및 개발의 제반 이슈에 정통하고 사업 개발, 관리, 평가 능력을 갖춘 전문가”로 분석합니다. 국제개발 전문가에는 지역분석 전문가, 프로젝트 관리 전문가, 모니터링 및 평가 전문가로 분류합니다.
출처: 한국국제협력단(KOICA)
단, 이 전문가 분류에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국제개발협력 전문가는 지역분석, 프로젝트 관리와 모니터링 및 평가 중 한 가지 업무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역분석, 프로젝트 관리, 모니터링과 평가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전문가 중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죠. 왜냐하면 국제개발협력 사업은 위의 모든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움직이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고, 전문가라면 적어도 세 가지 분야를 이해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한 사람을 전문가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우리는 전문가라고 하면 그 분야에 대한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대우하고, 그들이 가진 권위를 인정하게 됩니다. 게다가 그가 근무하는 조직의 이름(회사명)은 전문가의 의견과 행동과 권위에 타당성을 부여해주는 근거가 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전문가에 대한 시선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전문가들이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문제들에 대한 해법을 제공해주는 사람들을 전문가로 생각하고 있어요. 엄밀히 말하면 ‘친숙한 전문가’로 생각하죠. 예를 들면, 아동 행동 전문가로써 오은영 박사님, 반려동물 행동 교정 전문가로써 강형욱 훈련사가 ‘친숙한 전문가’에 해당 됩니다. 왜냐하면 육아와 반려동물은 우리의 가족이기 때문에 양육자 혹은 반려동물 주인, 반려동물과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 습관, 생각 등을 정확하게 교정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에게 쉽게 알려줘요.
이런 현상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문가는 높은 사회적 지위와 권위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현장에서 편안하게 소통할 수 있는 존재로 변하고 있어요. 게다가 우리는 그들의 전문성을 대표하는 것이 그들이 ‘소속된 조직’이 아니라 우리에게 필요한 해법을 즉각적으로 알려줄 수 있는 능력(전문성, 공감, 소통 능력 등)에 집중하게 됩니다.
저는 이 현상들을 관찰하면서 제가 일하고 있는 국제개발협력 분야에도 전문가에 대한 정의와 범위가 변하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기존의 국제개발협력 분야 전문가는 ‘분야별 전문가’와 ‘개발협력 전문가’로 구분됩니다.
국무조정실은 2022년 “ODA 전문인력 양성 및 활용 확대 방안”을 통해서 개발협력 전문가를 육성 중점대상으로 지정 후 개발협력 전문가의 범위에 해당되는 인력 양성에 집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개발협력 전문가 분류에 해당되는 인력을 중점 대상으로 지정한 것은 이해 됩니다. 우리나라의 개발협력 사업 수행구조를 대략적으로 정리해보면 사업을 ODA 사업을 발주 및 관리하는 정부와 공공기관(KOICA, 한국수출입은행)과 지식공유사업(KSP)을 발주 및 관리하는 한국개발연구원(KDI)국제개발협력센터(CID)를 공급자로 정의할 수 있어요. 공급자로부터 사업을 위탁하여 수행하는 기관들은 NGO, 개발컨설팅 회사(예: KODAC, KDS, Redi 등), 대학(대학원 포함), 민간기업 등이 있습니다.
출처: 한종택 멘토 블로그
단순하게 정리하면, 개발협력 사업을 수행하는 조직들은 각 사업의 발굴, 기획, 운영과 모니터링 및 평가를 수행할 인력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개발협력 사업에 대한 지식과 사업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인재들을 필요로 합니다. 마찬가지로 학교를 졸업 후 해외 봉사단, 인턴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일정 수준의 경험을 갖춘 취업 준비생들도 경력을 개발할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죠.
이를 위해서, 국무조정실은 체계적으로 개발협력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오랫동안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지적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안을 마련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국제개발협력의 전문가의 범위에 전례 없는 특이한 전문가들이 등장합니다. 1인 활동가(혹은 1인 기업)이죠(이 글에서는 편의상 1인 기업으로 명칭을 통일하겠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2021년에 발표한 1인 창조기업 업종별 현황에 따르면, 제조업(40.9%), 교육 서비스업(25%), 개인 및 소비용품 수리업(10.1%)순으로 1인 창조기업(약칭 1인 기업)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출처: 중소벤처기업부. 「2020년 1인 창조기업 실태조사」결과 발표. *저자 재구성
굳이 국제개발협력 분야에 적합한 1인 기업 업종을 선택한다면 ‘전문과학 기술서비스업(업종코드71. 전문서비스업)’에 해당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국표준산업분류 정의에 따르면 “전문 서비스업은 전문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을 말한다.”라고 정의합니다. 위의 분류를 아주 엄격하게 따지면 다른 분류에 포함될 수 있겠지만, 국제개발협력 관련된 업무는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기 때문에 임의로 전문 서비스업에 포함하였음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국제개발협력 1인 기업의 특징은 각 전문가들이 갖춘 분야별 전문성 혹은 개발협력 사업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업(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즉 지금까지 정부와 학계에서 정의한 국제개발협력 전문가의 분류처럼 특정 분야 혹은 전문성으로 구분되지 않고 두 개의 영역이 하나로 합쳐진 돌연변이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죠.
개발협력 전문가
분야 전문가
ODA 시행기관 종사자(KOICA 등)
NGO 근무인력
개발컨설팅 업계 종사자
학계 및 연구기관 종사자
농업 전문가
환경 전문가
보건 전문가
토목 전문가
1인 기업
개발협력 전문가 역량(사업관리, 모니터링 평가 등) +
분야 전문가 역량(분야별 전문성)
이런 맥락에서, 국제개발협력의 1인 기업의 등장은 기존의 국제개발협력 전문가에 대한 구분을 재고하는 요인이 된다고 생각해요. 1인 기업들이 기존의 경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독립 후 창업을 희망하거나 혹은 KOICA에서 제공하는 교육 프로그램(예: Step-up 등)을 이수 후 1인 기업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신입 개발협력 실무자가 될 수 있겠죠.
출처: 국제개발협력위원회. ODA 전문인력 양성 및 활용 확대 방안(안) p.13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국제개발협력 사업을 발주하고, 관리 및 운영하는 역량뿐만 아니라 회사를 경영할 수 있는 능력(예: 회계, 재무, 조달계약 등)부터 행정업무(예: 사업자 등록증 발급, 세금계산서 발급 등)처럼 회사에서 담당 부서가 지정된 업무들을 혼자서 수행하는 경험도 필요할 수 있어요.
다만 국제개발협력 1인 기업가를 정의할 때 주의할 점도 있어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국제개발협력 업무를 수행할 1인 기업을 주니어와 시니어 레벨로 구분하여 정의하는 구체적인 방안도 필요해요. 국제개발협력의 사업은 개발도상국의 특정 분야와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이 수행되고, 각 사업 분야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죠. 또한 사업에 적합한 솔루션을 제공하기 위해서 현지 관계자들과 의사소통, 사업 관계자들과의 네트워크 형성, 사업에 대한 이해 등처럼 국제개발협력 업계에서 일을 시작한 주니어들이 솔루션을 개발하거나 인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어려운 상황도 생길 수 있어요. 그래서 1인 기업으로 성장할 계획이 있는 개발협력 전문인력에게 필요한 직업교육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어요.
정부에서 분류한 국제개발협력 전문인력은 국제개발협력 사업과 분야별 전문성에 집중한 것이므로 위에서 나열한 직무능력을 명시하지 않았겠지만, 위드 코로나 시대의 국제개발협력 업무 환경의 변화와 일하는 방법의 변화를 생각하면 ‘국제개발협력’에 국한된 직업교육만으로 전문가 양성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국무조정실에서 발표한 ODA 전문인력 양성 및 활용 확대 방안(안)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면서 전하고 싶은 말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어요.
첫 번째는 국제개발협력 전문가에 대한 정의와 범위를 확장해야 합니다. 국제개발협력 사업이 국내에서 사업을 관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해외 현장에 나가는 것도 포함되는 특수성이 있는 직업이지만, 더 이상 모든 개발협력 실무자들이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기업이 되어서 사업을 발굴하고, 참여하는 구조로 변하고 있어요. 비록 인력양성 계획(안)이 올해 수립되었고, 시범 운영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보이지만 장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한국표준산업분류에서 업종분류에서 ‘국제개발협력 컨설팅 서비스(가칭)’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현재 국제개발협력 관련 1인 기업은 태동 단계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ODA 전문인력이 체계적으로 양성되어 간다면 이 과정에서 국제개발협력 1인 기업도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향후 이 기업들의 증감 여부를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보완점을 찾기 위해서 업종분류에서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종에 ‘국제개발협력 컨설팅 서비스(가칭)’을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 및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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